음악이나 영화처럼 무한대로 복제가능한 예술작품에는 진품이 없다. 작품의 탄소연대를 따져 진품여부를 가려내는 모습은 이제 미술계에서나 볼 수 있는 구경거리가 되었다. 더구나 앤디 워홀과 뒤샹, 백남준 이후로 미술은 장인적 기술보다 통합적 아이디어 구상이 관건이 되었다.

그러나 진품이 없다고 해서 원본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네가티브 필름, 음악은 마스터테입을 그 원본으로 가진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한 지금도 영화는 대부분 네가티브 필름에서 딴 포지티브 필름으로 상영하고, 음악은 마스터테입을 음원으로 사용한다. 그렇다고 해서 네가티브 필름과 마스터테입이 진품으로 대접받는 건 아니다. 오히려 무한히 복제품을 뽑아낼 수 있는 리소스로서의 위상이 강하다.

음악을 저장하는 매체가 LP에서 TAPE으로, 다시 CD를 거쳐 MP3로 변화하기까지는 채 80년도 걸리지 않았다. 한 사람의 일생에 걸쳐 음악 매체가 디지털 파일이라는 무형 매체로 변화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마스터테입이 분실되었어도 예전에 발매된 CD를 음원으로 삼으면 새로운 리마스터 음반들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안 팔려서 문제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날로그 매체에 대한 향수도 만만치 않다. 오디오 기기 시장은 이미 하이엔드화된 지 오래이고, LP가격도 점점 상승하는 추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절판되어 나오지 않는 중고 CD의 가격은 놀라울 지경이다. 윤상의 더블 앨범 <Cliche>의 중고 가격은 무려 42000원에 달한다. 정가의 네 배에 가깝다. 그뿐만 아니라 2002년 발매된 <이사>는 30000원, 2003년 <There is a Man>은 최저 가격만 29000원이다(2009년 6월 알라딘 중고샵 기준). LP의 위상이야 엔티크에 가까워졌다고 쳐도 플라스틱 케이스와 종이 자켓, 그리고 MP3보다 크게 좋지 않은 음질을 제공하는 CD가 왜 이렇게 비싸진 것일까?



얼마전 진행된 백두산 인터뷰 중에 한 인터뷰이가 음반 사인을 청했다. 백두산의 새 앨범이 아니라 유현상이 윤시내 등과 함께했던 밴드 '사계절'의 음반이었다. 락과 사이키델릭, 트롯까지 온갖 장르의 음악들이 들어있는 전설의 그 음반. 유현상은 무척 반가워하며 기꺼이 사인을 해주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CD가 복제라는 것. (여기서 음반을 사지 않고 복제했다고 나무랄 게 아니다. 잘 팔리지 않는 음반을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데다 절판된 음반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처럼 힘들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토록 오래된 밴드의 음반이라면 복제를 해서라도 소장하고 싶은 마음을 섣불리 비난하기 힘들다)

어쨌든 사계절의 복제 CD에는 유현상 창작자 본인의 사인이 들어갔다. 그렇다면 이 음반은 진짜일까, 가짜일까? 물론 복제예술에서 진짜냐 가짜냐의 질문은 범주부터 맞지 않다. 진짜냐 가짜냐가 아니라, 정품이냐 복제냐라고 물어야 맞는 법이다. 그러나 소장가들이 갖고 있는 음반을 제외하면 현재 시장에서 거래되는 사계절의 정품 음반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예 정품을 찾아볼 수 없는 상황에서, 유현상의 사인을 받은 사계절의 복제 CD는 정품으로 봐야 할까, 아니면 수많은 복제 CD중 하나로 봐야 할까? 실은 이 질문에도 함정이다. 왜냐하면 정품도 복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정품 음반이 MP3와 스트리밍 서비스로 대체되면서 음악 자체에 지불하는 원가는 예전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떨어졌다. 유통과 케이스, 자켓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이 절감되었다고는 하지만 달랑 CD 한 장 가격으로 6개월 스트리밍을 들을 수 있으니, 지난 10년간 물가 상승은 음반시장에 적용되지 않는 말이었다. 한편 역으로 오디오 시장이 활성화되고 예술성을 인정받은 일부 아티스트들의 중고 음반 가격이 올라가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절판된 음반, 더구나 MP3와 공CD, 플라스틱 케이스와 컬러 복사기만 있으면 얼마든지 복제할 수 있는 음반의 가격이 왜 오르는 것일까? 복제된 음악작품이 진품의 위상을 확보한다기보다는 정품이라는 고정된 물질이 점점 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정품을 원하는 소비자는 줄었으되 정품 자체는 씨가 말라버렸으니, 경제력을 지닌 소비자와 예술성을 인정받는 몇몇 음반을 중심으로 중고 시장이 형성되는 한편으로, 음반을 점점 적게 찍어내는 추세가 가속되어 불과 2003년에 발매한 음반이 리마스터링되는 기현상마저 일어나고 있다. 


                                                      리마스터링 된답니다. 울지마세요....



음악매체는 끊임없이 진화하여 드디어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까지 발전했지만 그 와중에도 물질적 존재로서의 음악을 갈구하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러한 요청은 일단 고흐나 마네의 그림이 갖고 있는 진품의 아우라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원본을 요구하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음반 컬렉터들이 마스터테입을 사모은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은 다양한 혜택을 가져왔지만, 한편으로는 적당한 것으로 대체되기도 전에 기존에 존재하는 시장구조를 상당 부분 붕괴시키시도 했다. 대중음악이야말로 그 변화를 가장 크게 느낀 분야일 것이다. 그 결과 인류는 음악이 주어진 유사 이래 가장 자유롭게, 엄청난 양의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반 자체는 계속 만들어질 것 같다. 왜냐하면 진품과 정품 여부를 떠나 예술작품의 물질성에 대한 욕구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음악을 케이스와 자켓, CD로서 물질화시킨 작품을 소유하는 것은 다양한 감성을 발생시킨다. 작품에 대한 물질적 소유욕은 물론 정당한 댓가를 지불했다는 기쁨, 동시대성을 살아간다는 소속감...그 중에서도 사랑하는 예술작품이 눈에 보이고 손에 만질 수 있는 물질로서 현존한다는 느낌, 그 봉인된 현장성이야말로 디지털 시대의 음반이 가지고 있는 마지막 무기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오필리어

<동살풀이>




<일렉트릭산조>




<새타령><뱃노래><신고산타령>





<산조-자진모리>




Posted by 오필리어
세시간 좀 넘게 걸린 인터뷰를 다녀왔다. 시나위, 부활, 들국화, 인순이....등을 후배로 거느린 백전노장들이다.
유현상 선생님은 친절한 아저씨 풍이었고, 김도균 선생님은 의외로 지적인 도인 분위기였다.
어쨌든 얘길 하다 보니 대박 멘트 몇 개가 나왔다.

그런데 그 오랜 녹취 언제 다푸나...




선생님들 그날 감사했습니다. 직접 뵙고 이야기 나누어 영광이었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



Posted by 오필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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